은진송씨우암문정공파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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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01.png 송자대전

 

eunjin3_01.jpg국가유산 설명-

이 목판은 조선 후기의 대유학자 우암 송시열(1607∼1689) 의 문집과 연보 등을 모아 만든 『송자대전』의 목판으로 총 11,023판이다.

 

송시열은 김장생의 문하생으로 힘있고 논리적인 문장과 서체에 뛰어났고 평생 주자학연구에 몰두하여 율곡 이이의 학통을 잇는 기호학파의 주류이었다. 여러 관직을 거쳐 좌의정까지 오르지만 낙향과 유배, 재기용과 은거를 거듭하며 결국은 남인들에 의해 사약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우암문집』의 초판은 1717년(숙종 43)에 민진후가 임금의 명을 받아 교서관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하였으며, 그 후 정조 즉위 초에 전서간행의 어명이 떨어져 글을 수집하였고, 옛 책과 합쳐 그 목판본이 1787년(정조 11)에 평안감영에서 책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첫권과 연보는 서울의 교정소에서 별도로 간행되었으며, 총 215권 102책의 전서(全書)를 완성하여 『송자대전』이라 이름하였다.

 

송자대전책판은 1819년(순조 19)에 장판각을 지어 보관하였으나 1907년에 정미7조약에 반대하여 의병이 궐기하자, 일본군은 장판각이 있던 환장사가 의병의 유숙처라는 이유로 방화, 이로 인해 소실되었다. 현재 우암사적공원 장판각 내에 소장된 목판은 1920년대에 송시열의 후손과 유림들이 다시 간행한 것이다. 이 때 『송서습유』4책과 『속습유』2책을 함께 간행함으로써 『송자대전』은 총 108책에 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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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_txt_ikon02.gif 조선 후기 학자이자 문신인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문집.

 

조선 후기 붕당 정치의 당쟁이 심화된 시기에 당쟁을 주도하면서 서인을 이끌고, 노론⋅소론 분열의 정점에 있었던 송시열은 83세에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다. 수많은 정치적 부침을 거듭하였던 송시열은 재야에 있을 때 성리학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고, 1689년(숙종 15) 송시열 사후, 그의 수제자였던 권상하(權尙夏)의 주도로 송시열이 생전에 남긴 글을 묶어 문집을 편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송시열의 글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은 서울의 이희조와 황강(黃江) 지역에서 활동했던 권상하가 맡았다. 1694년경(숙종 20) 초본(草本)이 완성되었으나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이유로 간행이 미루어졌다. 이때 남겨진 필사본인 초본 40책이 『우암유고(尤庵遺稿)』라는 서명으로 전하며 이를 황강본(黃江本)이라고 한다. 1717년(숙종 43)에는 민진후(閔鎭厚)의 건의에 따라 왕명(王命)으로 167권 63책의 『우암 생문집(尤菴先生文集)』을 교서관(校書館)에서 활자로 간행하였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을 뿐 아니라 노론 측의 정치적 협조가 필요했던 정조(正祖, 재위 1776~1800)가 즉위하면서 송시열에 대해 더욱 높은 평가가 이루어졌고, 기존 문집에서 누락된 글과 흩어져 있는 글을 모아 문집을 새로 간행할 것을 명하였다. 1787년(정조 11) 『송자대전』이라는 이름으로 총 236권 102책의 방대한 분량의 문집이 간행되었다. 일반적으로 저자의 호를 제명(題名)으로 삼는 것과 달리 ‘송자(宋子)’라는명칭을 붙인 것은 송시열이 ‘주자(朱子)’에 버금가는 스승임을 나타낸 것이며, ‘문집’이라고 칭하지 않고 ‘대전(大全)’이라 칭한 것 역시 주자의 문집인 ‘주자대전(朱子大全)’과 비견된다는 뜻이다.

 

성에 ‘자(子)’를 붙여 호칭된 사람은 그전까지 이황, 이이 외에는 없었으며, ‘대전(大全)’이라 한 것은 조선에서 출간된 문집 중 유일하다. 이러한 명칭은 송시열의 학문적 깊이가 매우 깊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 노론이 주도권을 갖고 의도적으로 송시열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송자대전』을 통해 송시열의 춘추대의(春秋大義),북벌(北伐), 존주(尊周) 등 성리학적 의리에 대한 강한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송시열의 사상은 양란(兩亂) 이후 흐트러진 사회 기강을 바로잡는 데 도움을 주었으나 이후 사회를 더욱 보수화, 경직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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