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묘배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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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문묘(文廟)에는 유학의 발전(發展)에 기여(寄與)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현(先賢)들을 모시고 제사(祭祀)를 지내면서 학생(學生)들의 사표(師表)로 삼았다.
나아가 성균관(成均館)과 향교(鄕校)에 모셔지는 학자들을 문묘배향공신(文廟配享功臣)이라고 불러 최고(最高)의 영예(榮譽)와 권위(權威)를 부여(附與)했다. 조선 시대 문묘배향공신을 배출(輩出)한 가문(家門)은 최고의 학자 가문으로 존경(尊敬)받았으며 국가(國家)에서는 기회(機會)가 되는 대로 그 후손(後孫)들을 녹용(錄用 특채特採)하였다. 문묘에 배향된다는 것은 전통사회(傳統社會)에서는 가문의 최고의 영예였다. 문묘에 배향하기 위한 논의(論議) 과정(過程)을 보면 정밀(精密)하면서도 치열(熾烈)했다는 사실(事實)을 알 수 있다.
조선 왕조(朝鮮王朝)의 왕족(王族)인 전주 이씨조차도 문묘에 배향된 이가 없다. 삼대 정승(三代政丞) 집인 달성 서씨, 시대(時代)마다 인물(人物)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안동 권씨, 안동 김씨, 국반(國班)이라고 자긍(自矜)하는 연안 이씨도 문묘에 배향된 인물이 없다. 의성 김씨의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풍산 류씨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은 물론 그 이후(以後)의 인동 장씨의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과 같은 학자들 모두가 문묘배향의 논의까지 있었지만 한 분도 여기에 들지 못했다.
가격(家格, 문벌門閥) 즉 가문(家門)의 위상(位相)을 순서(順序)대로 말한다.
첫째, 문묘배향 가문(文廟配享 家門)
둘째, 대제학(大提學, 문형文衡)을 배출(輩出)한 가문(家門)
셋째, 정승(政丞)이나 판서(判書), 청백리(淸白吏)를 배출(輩出)한 가문(家門)
넷째, 충신(忠臣)이나 효자(孝子), 효부(孝婦), 열녀(烈女)를 배출(輩出)한 가문(家門)의 순서(順序)라 할 수 있겠다.
고사(故事)에 의하면 우리나라 육 대성(六大姓)은 金, 李, 朴, 安, 鄭, 崔 라고 하였는데, 옛 사람들이 양반(兩班)의 척도(尺度)를 논할적에 “삼왕비 불여 일정승(三王妃不如一政丞)이며 삼정승 불여 일선생(三政丞不如一先生)이라” 했다. 즉 왕비 세 사람을 배출한 집안이 한 사람의 정승을 배출한 집안을 당하지 못하며, 세 사람의 정승을 배출한 집안이 한 사람의 선생을 배출한 집안을 당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한 선생은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된 18현(賢)에 뜻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옛말에 한 집에서 정승이 세 명 나오면 명문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집도 대제학(大提學)이 한 명 나온 집보다는 못하고, 대제학이 세 명이라도 문묘배향(文廟配享) 한 명 나온 집안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어떤이는 말하기를 21세기 세계화 시대(世界化 時代)를 맞아 양반 향수(鄕愁)에 젖은 무슨 양반타령이냐고 반문하겠지만 “로마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 명문(名門)이란 예절을 중시(重視)한 인내와 끈기 그리고 부단한 노력의 결집(結集)이며 효(孝)는 인간 모든 행동의 근본이라 하였다. 오늘날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진 사회에서 우리들이 다른 학문에 앞서 꼭 배워야 할 필연의 과제가 바로 도의교육(道義敎育)인 것이다.
비록 글로벌(Global) 시대를 맞아 과학문명(科學文明)의 이기(利器)를 마음껏 누린다 할지라도 천륜(天倫)의 인연(因緣)은 끊을 수 없는 것이 천리(天理)이며, 미국에서 명문으로 자랑하는 케네디가(家)에서도 족보(族譜)를 마이크로 필름에 저장하여 보전(保全)하고 있다고 하는데,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잡혀온 킨타쿤테의 후예들도 뿌리 찾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